CurriculumLM305 고난·질병·죽음을 마주할 때 › 제6주 신학적 난제들

강의 6-3: 고난과 죄의 관계

10 min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벌을 받나요?"

이 질문은 병상에서, 사고 이후에, 예상치 못한 고난 앞에서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에 따라 돌봄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이 강의는 요한복음 9장을 중심으로 인과응보 신학(모든 고난을 개인의 죄에 대한 벌로 보는 틀)을 비판합니다. 동시에 갈라디아서 6:7이 말하는 실제 인과 관계도 함께 놓아, 반대 극단으로도 가지 않도록 균형을 잡습니다.

What these 10 minutes give you

  • 요한복음 9:1-3에서 예수님이 인과응보 신학을 어떻게 반박하시는지 설명한다.
  • 갈라디아서 6:7이 말하는 실제 인과 관계를 안다.
  • 두 극단(모든 고난은 죄의 벌 / 모든 고난은 죄와 무관)을 각각 식별한다.
  • 다른 사람의 고난 앞에서 원인을 추측하지 않는 실천적 태도를 갖춘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9:1-3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7

3.1 제자들의 질문 — 인과응보의 논리

요한복음 9장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제자들의 첫 반응이 이 강의의 출발점입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

이 질문의 전제를 주목하십시오. 제자들은 고난에는 반드시 특정한 죄의 원인이 있다고 전제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이 사람 본인이나 그 부모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들의 논리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 그렇다면 태어나기 전에 무슨 죄를 지을 수 있었단 말인가?

이 질문은 당시 흔한 적 가정을 반영합니다. 고난은 죄의 결과이고, 고난의 크기는 죄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했던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3.2 예수님의 반박

예수님의 답은 이 전제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요 9:3)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장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죄가 더 큰가"를 판정하지 않으십니다. 애초에 이 틀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대안적 목적을 제시하십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고난의 원인을 죄에서 찾는 대신, 예수님은 시선을 하나님이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하실 것인가로 옮기십니다. 이것은 6-1강에서 다룬 "설명보다 임재"의 패턴과도 연결됩니다. 원인을 캐묻는 대신, 지금 하나님이 하실 일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3.3 균형 — 갈라디아서 6:7도 함께 놓기

고난과 죄 — 두 극단과 균형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9:3이 "모든 고난은 죄와 무관하다"는 뜻으로 확장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실제 인과 관계도 분명히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자기 행동의 결과로 오는 고난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무한 생활이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무모한 선택이 재정적 고통을 낳기도 하며, 관계의 죄가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흐름

두 본문을 함께 놓으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나옵니다.

  • 모든 고난이 죄의 벌이라는 것 (극단 A)요 9:1-3이 반박한다.
  • 모든 고난이 죄와 무관하다는 것 (극단 B)갈 6:7이 반박한다.
  • 성경의 균형 — 어떤 고난에는 실제 인과가 있고, 어떤 고난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어느 경우든 관찰자가 원인을 판정할 권한은 없다.

3.4 핵심 — 원인을 추측하고 심판하지 않는다

이 강의의 실천적 핵심은 이론적 정리보다 앞섭니다.

요 9:3갈 6:7이 함께 가르치는 것은, 고난에 인과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다른 사람의 고난 앞에서 그 원인을 추측하고 심판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①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제자들도 몰랐고, 우리도 모릅니다. 요 9장의 사람에게 원인이 없었던 것처럼, 겉보기에 비슷한 다른 사람에게는 실제 인과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겉모습만으로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② 판단의 결과는 언제나 이중의 고통입니다. 고난 자체의 고통에 "네 죄 때문"이라는 판단이 더해지면, 돌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상처가 됩니다.

③ 판단은 우리의 자리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6:7의 문맥(1-5절)은 오히려 **"온유한 심령으로 그런 자를 바로잡고… 짐을 서로 지라"**고 말합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아는 것과, 그 원리를 근거로 남을 심판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3.5 실제 돌봄에서의 적용

병상에서 "왜 저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원인을 찾아 주려 하지 마십시오. 요 9:3처럼 시선을 옮기십시오.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실지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지금 당신 곁에 있습니다."

누군가 스스로 "내가 뭘 잘못해서"라고 자책할 때, 무조건 "아니에요, 죄와 무관해요"라고 단정하지도 말고, 무조건 "그러게요, 뭔가 원인이 있겠죠"라고 동조하지도 마십시오. 원인을 판정하는 대신, 지금의 고통에 함께 머무르십시오.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해 이야기할 때(뒷담화·기도 제목 나눔 포함), "그 사람이 뭘 잘못해서"라는 식의 추측을 하지 않는 것이 이 강의의 가장 실천적인 결론입니다.


4-1. 고난과 죄 — 두 극단과 균형

3.3절의 도표를 참조하십시오.

4-2. 요한복음 9장 흐름

3.3절의 도표를 참조하십시오.

4-3. 병상·심방 대화 점검표

상황 하지 말 것 대신 할 것
"제가 뭘 잘못해서 이런가요" "글쎄요, 뭔가 있었겠죠" "그건 우리가 판단할 수 없어요. 지금 곁에 있고 싶어요"
다른 사람의 병에 대한 소문 원인을 추측하며 이야기함 추측을 멈추고 기도로 전환
자녀의 병 앞에서 부모의 자책 침묵으로 방치 요 9:3을 있는 그대로 전해 줌: "부모의 죄가 아니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어요"

7. 복습 카드

6-3강 복습 카드

앞면 뒷면
요 9:2-3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 인과응보 신학 반박.
갈 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실제 인과도 존재함.
두 극단 모든 고난이 죄의 벌이라는 것과, 모든 고난이 죄와 무관하다는 것 둘 다 극단.
실천 원칙 다른 사람의 고난 앞에서 원인을 추측하고 심판하지 않는다.

★ 꼭 기억할 한 문장 고난의 원인을 추측해 심판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

✓ 이번 주에 할 행동 최근에 누군가의 고난 원인을 마음속으로 추측한 적이 있는지 돌아보기.

In short

  • 제자들은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라고 물으며 모든 고난에는 죄의 원인이 있다는 인과응보 신학을 전제했다(요 9:2).
  •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며 그 틀 자체를 반박하셨다(요 9:3).
  • 대신 시선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으로 옮기셨다.
  • 동시에 갈라디아서 6:7 —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은 실제 인과가 존재함을 말한다. 이를 부정하는 것도 극단이다.
  • 두 극단: 모든 고난이 죄의 벌이라는 것(요 9:3이 반박) / 모든 고난이 죄와 무관하다는 것(갈 6:7이 반박).
  • 핵심은 다른 사람의 고난 앞에서 원인을 추측하고 심판하지 않는 것이다. 겉모습만으로 구분할 수 없고, 판단은 이중의 고통을 만들며, 판단은 우리의 자리가 아니다.
  • 돌봄의 실천: 원인을 판정하려 하지 말고, 지금의 고통에 함께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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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and discussion

  •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직접, 또는 비슷한 형태로)
  • 예수님이 "누구의 죄가 더 큰가"를 판정하지 않으시고 틀 자체를 바꾸신 것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 갈라디아서 6:7이 말하는 실제 인과를 부정하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 "겉모습만으로 원인의 유무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에 동의합니까?
  • 최근에 누군가의 고난 원인을 마음속으로 추측한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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