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6-3: 혐오, 차별, 그리고 환대의 윤리: 디지털 혐오 문화와 이주민·난민 문제에 대한 성경적 대안 (1/2)
우리가 살아가는 초불확실성의 시대(기후 위기, 경제적 양극화, 저성장)는 필연적으로 대중의 마음속에 거대한 '두려움(Fear)'과 '불안(Anxiety)'을 잉태합니다. 내 삶의 기반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은, 그 원인을 돌릴 누군가를 다급하게 찾게 만듭니다. 그 결과, 현대 사회는 두려움을 방어하기 위해 나와 다른 타자(The Other)를 악마화하고 배척하는 '혐오(Hate)와 차별'의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오늘날 혐오는 국경, 성별, 세대, 이념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폭발하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집단을 향해 조롱과 저주를 퍼붓는 '디지털 혐오(사이버 불링, 캔슬 컬처)'가 일상이 되었고, 이주민과 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나 내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로 취급하는 '제노포비아(Xenophobia)'가 전 세계적인 정치적 광기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인간이 왜 타자를 혐오하는지 그 심리적, 신학적 메커니즘을 해부하고, 디지털 공간의 혐오 문화와 난민 문제 앞에서 교회가 어떻게 적대감의 담을 허물고 십자가의 포용을 실천하는 '환대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는지 깊이 있게 탐구하겠습니다.
이 13분으로 얻는 것
-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메커니즘'과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 개념으로 혐오의 심리적·신학적 구조를 설명할 수 있다.
- 구약의 '나그네(Ger) 신학'과 예수 그리스도의 난민 경험(마 2:13-15)에 근거하여 이주민·난민 환대의 성경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 미로슬라브 볼프의 '배제와 포용' 이론을 통해 십자가가 어떻게 배제의 죄악을 극복하는 포용의 모델이 되는지 논증할 수 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4-16
서론: 두려움이 낳은 괴물, 혐오의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초불확실성의 시대(기후 위기, 경제적 양극화, 저성장)는 필연적으로 대중의 마음속에 거대한 '두려움(Fear)'과 '불안(Anxiety)'을 잉태합니다. 내 삶의 기반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은, 그 원인을 돌릴 누군가를 다급하게 찾게 만듭니다. 그 결과, 현대 사회는 두려움을 방어하기 위해 나와 다른 타자(The Other)를 악마화하고 배척하는 '혐오(Hate)와 차별'의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오늘날 혐오는 국경, 성별, 세대, 이념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폭발하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집단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조롱과 저주를 퍼붓는 '디지털 혐오(사이버 불링, 캔슬 컬처)'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국경을 넘어 생존을 위해 찾아온 이주민과 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나 내 일자리를 빼앗는 기생충으로 취급하는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 혐오)'가 전 세계적인 정치적 광기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살벌한 적대감의 광장 한복판에서 기독교 윤리는 무엇을 선포해야 합니까? 성경은 혐오로 무장한 세상을 향해 십자가의 가장 적인 윤리인 '(Hospitality)'를 제시합니다. 본 강의에서는 인간이 왜 타자를 혐오하는지 그 심리적, 적 메커니즘을 해부하고, 디지털 공간의 혐오 문화와 난민 문제 앞에서 교회가 어떻게 적대감의 담을 허물고 십자가의 포용을 실천하는 '환대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는지 깊이 있게 탐구하겠습니다.
제1절. 혐오의 해부학: 희생양 메커니즘과 '얼굴'의 상실
인간은 왜 그토록 쉽게 타인을 혐오하고 차별할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철학자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이론과,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윤리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메커니즘(Scapegoat Mechanism)'
지라르는 인류의 역사를 분석하며, 사회 공동체 내부에 갈등과 위기(전염병, 기근, 경제 불황 등)가 고조되어 폭력 사태로 번질 위험에 처하면, 공동체는 무의식적으로 그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가장 만만하고 연약한 소수자, 즉 '희생양(Scapegoat)'을 찾아낸다고 주장했습니다. 공동체는 "이 모든 불행은 저들(특정 지역 출신, 소수 민족, 난민, 여성, 성소수자 등) 때문이야!"라고 선동하며, 희생양을 향해 집단적인 혐오와 폭력을 행사합니다.
놀랍게도, 희생양을 향해 돌을 던지고 나면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 일시적으로 봉합되고 묘한 연대감(거짓된 평화)이 형성됩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를 조장하여 지지층을 결집하는 행태가 바로 이 끔찍한 희생양 메커니즘의 전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폭력적인 세상의 희생양 메커니즘에 의해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돌을 던질 때, 그 돌을 내려놓고 희생양의 곁에 서야 하는 자들입니다.
2. 레비나스와 '타자의 얼굴(The Face of the Other)'
레비나스는 윤리의 출발점을 나 자신의 이 아니라, 내 앞에 서 있는 '타자의 얼굴'에서 찾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고통받고 헐벗은 타자의 얼굴은 우리에게 "나를 죽이지 말라(Thou shalt not kill)"는 하나님의 무한한 도덕적 명령을 전달합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 타자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때 함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 혐오의 원인: 오늘날 소셜 미디어에서 혐오가 그토록 잔인해진 이유는 바로 사이버 공간에서 '타자의 얼굴이 소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익명성 뒤에 숨어 스크린의 텍스트(픽셀)만을 마주할 때, 인간은 상대방이 피와 눈물을 가진 체임을 망각합니다. 얼굴이 사라진 곳에서 공감 능력은 마비되고,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하나의 오락거리로 전락하고 맙니다.
제2절. 이주민과 난민: 성경을 관통하는 '나그네(Ger) 신학'
현대 사회의 혐오가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대상은 국경을 넘어온 이주민과 난민들입니다. "우리 국민이 먼저다(자국 우선주의)", "저들은 테러리스트일 수 있다"는 공포는 난민들을 철조망 밖으로 밀어냅니다. 그렇다면 국가 안보와 경제적 부담이라는 현실적 장벽 앞에서 기독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합니까?
1. 이스라엘의 정체성: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였음이라"
구약 성경은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국민과 외국인(이주민)을 차별하지 말고 동일한 과 사랑으로 대우할 것을 강력하게 명령합니다. 구약에서 나그네(거류민)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게르(Ger)'입니다. "거류하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Ger)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이니라" (레 19:34)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윤리적 당위성을 그들의 '과거 기억'에서 찾으십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은 '자랑스러운 핏줄'이 아니라, 과거 이집트에서 억압받던 비참한 난민이자 이주 노동자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너희도 한때 버림받은 난민이었으나 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이제 너희 땅에 들어온 난민들을 환대하라." 이것이 기독교 나그네 윤리의 절대적 기초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 난민으로 오신 구원자
신약으로 넘어오면 이 나그네 신학은 더욱 극적으로 성취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갓난아기 시절 헤롯의 학살(국가 폭력)을 피해 이집트로 망명해야 했던 '난민(Refugee)'이셨습니다(마 2:13-15). 또한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의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당신 자신을 굶주리고 헐벗은 나그네와 완벽하게 동일시하셨습니다.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따라서 오늘날 우리 국경을 두드리는 난민과 이주 노동자들을 향해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곧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문을 닫아버리는 영적 맹인과 같은 행위입니다.
제3절. 미로슬라브 볼프의 '배제와 포용(Exclusion and Embrace)'
그렇다면 나와 문화가 다르고, 심지어 나에게 적대적일 수도 있는 타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끔찍한 인종 청소(학살)를 당한 크로아티아 출신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그의 명저 《배제와 포용》을 통해 피비린내 나는 증오를 끊어낼 위대한 십자가의 신학을 제시합니다.
1. 배제(Exclusion)의 죄악성
볼프는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죄악을 '타자를 향한 배제'로 규정합니다. 배제는 타자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그를 나의 통제 아래 두려 하거나(동화), 나의 영역에서 완전히 추방(제거)하려는 폭력입니다. "너는 우리와 다르니 당장 이 땅에서 나가라"는 난민 반대 시위가 전형적인 배제입니다.
2. 십자가: 원수를 향해 팔을 벌리시는 하나님
볼프는 이 끔찍한 배제의 사슬을 끊어내는 유일한 대안은 '포용(Embrace)'뿐이며, 그 포용의 완벽한 모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역설합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원수 된 우리를 '배제(심판하여 지옥에 던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두 팔을 넓게 벌리시고, 배신자인 인류를 향해 "당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 안에 공간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이 가장 더러운 죄인(타자)을 품기 위해 자신의 가슴을 찢어 자리를 내어주신 우주적 포용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와 너무나도 다른 타자라 할지라도, 내 마음과 삶의 공간을 비워 그를 받아들이는 '십자가적 포용'을 모방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지닙니다.
[표 1] 제노포비아(세속적 배제)와 필록세니아(기독교적 환대)의 대조
| 비교 기준 | 제노포비아 (Xenophobia / 혐오와 배제) | 필록세니아 (Philoxenia / 십자가의 환대) |
|---|---|---|
| 어원적 의미 | 이방인(Xeno) + 공포/혐오(Phobia) | 이방인/나그네(Xeno) + 형제적 사랑(Philia) |
| 타자를 보는 시각 | 나의 파이(일자리, 안전)를 빼앗는 잠재적 위협 | 내게 찾아온 ''이자 섬김의 대상 |
| 안전의 근거 | 배타적 국경선 강화, 동질 집단끼리의 결속 | 십자가 안에서 원수 된 담을 허무는 그리스도의 평안 |
| 작동 메커니즘 | 희생양을 만들어 돌을 던짐으로 거짓 평화를 얻음 | 내가 기꺼이 희생양(십자가)이 되어 타자의 죄를 덮음 |
| 사회적 결과 | 분열, 폭력, 극단적 양극화와 캔슬 컬처 | 화해, 상처의 치유, 다양성이 존중되는 샬롬 공동체 |
핵심 요약
- 두려움과 불안은 지라르가 말한 '희생양 메커니즘'을 통해 소수자를 향한 집단적 혐오로 표출되며,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이 소거된 디지털 공간에서 이 혐오는 더욱 잔인해진다.
- 구약의 '나그네(Ger) 신학'(레 19:34)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난민 경험(마 2:13-15)은 이주민·난민 환대가 선택이 아니라 성경적 정체성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 미로슬라브 볼프의 '배제와 포용' 신학에 따르면, 배제는 인류의 근본 죄악이며 십자가는 하나님이 원수 된 인류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신 우주적 포용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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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및 토론
- 내 안의 '희생양 메커니즘' 분별하기: 우리 사회가 경제적 위기나 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특정 소수 집단(예: 외국인 노동자, 특정 성별, 특정 지역 출신 등)에게 분노를 쏟아붓고 마녀사냥을 했던 구체적인 사례를 떠올려 보십시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동조하며 '거짓 평안'을 얻은 적은 없는지 성찰해 보십시오.
- 이주민·난민 문제에 대한 '배제와 포용'의 적용: 국가 안보와 경제 보호를 주장하며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교인들에게, 미로슬라브 볼프의 십자가 신학(자신의 공간을 내어주는 포용)과 구약의 '나그네(게르) 신학'을 근거로 하여 난민 환대의 당위성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현실적인 국가 정책의 한계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명령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조율할지 토론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