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부터 오늘까지,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를 나란히 — 107개 사건.
세계 교회 한국 교회
30 주후 30년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하고 삼천 명이 세례를 받다.
49 주후 49년
이방인 신자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하다 — 행 15장.
64 주후 64년
70 주후 70년
110 주후 110년
155 주후 155년
"팔십육 년 동안 그를 섬겼거늘" — 서머나에서.
180 주후 180년
영지주의에 맞서 신앙의 규범과 사도적 계승을 논하다.
230 주후 230년
최초의 조직신학적 시도이자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정점.
250 주후 250년
303 주후 303년
성경을 불사르고 성직자를 투옥한 마지막 대박해.
313 주후 313년
325 주후 325년
아리우스에 맞서 성자의 동일본질(호모우시오스)을 고백하다.
367 주후 367년
381 주후 381년
성령의 신성을 선포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완성하다.
386 주후 386년
"집어 들고 읽으라" — 밀라노의 정원에서.
397 주후 397년
410 주후 410년
"기독교가 로마를 망쳤다"는 비난과 『하나님의 도성』의 배경.
431 주후 431년
451 주후 451년
네 부정어 — 혼합됨 없이, 변화됨 없이, 분리됨 없이, 나뉨 없이.
476 주후 476년
529 주후 529년
"기도하고 일하라" — 서방 수도원 운동의 기초.
590 주후 590년
800 주후 800년
성탄절, 교황이 황제에게 관을 씌우다 — 신성 로마 제국의 이상.
1054 주후 1054년
1095 주후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의 호소 —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신다".
1215 주후 1215년
1265 주후 1265년
스콜라 신학의 정점이자 이후 가톨릭 신학의 뼈대.
1309 주후 1309년
칠십 년 동안 교황청이 프랑스에 머물다.
1378 주후 1378년
두 명, 이어서 세 명의 교황이 서로를 파문하다.
1382 주후 1382년
1415 주후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 — 백 년 뒤 루터가 이어받을 불씨.
1453 주후 1453년
동방의 학자와 헬라어 사본이 서방으로 흘러들다.
1455 주후 1455년
1516 주후 1516년
"루터가 부화시킨 알을 에라스무스가 낳았다".
1517 주후 1517년
비텐베르크 — 면죄부에 대한 학문적 토론 제안이 유럽을 흔들다.
1519 주후 1519년
루터가 공의회의 무오성을 부인하고, 츠빙글리가 마태복음을 연속 강해하다.
1521 주후 1521년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1522 주후 1522년
1525 주후 1525년
개혁이 세 방향으로 갈라진 해.
1529 주후 1529년
"이것은 내 몸이다" — 루터와 츠빙글리가 끝내 갈라서다.
1530 주후 1530년
멜란히톤이 쓴 루터파의 공적 고백.
1534 주후 1534년
1536 주후 1536년
스물일곱 살의 망명 학자가 쓴 여섯 장의 책.
1540 주후 1540년
로욜라 — 가톨릭 자체 개혁과 세계 선교의 동력.
1545 주후 1545년
1549 주후 1549년
영어로 드리는 예배 — 잉글랜드 신앙의 형식이 되다.
1555 주후 1555년
"그의 영토에 그의 종교" — 잠정적 공존.
1559 주후 1559년
제네바 아카데미 설립, 스코틀랜드 개혁의 시작.
1563 주후 1563년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1572 주후 1572년
1598 주후 1598년
1618 주후 1618년
1646 주후 1646년
1648 주후 1648년
삼십년 전쟁의 종결 — 교파 국가 체제의 확립.
1675 주후 1675년
경건주의의 선언문 — 정통주의 이후의 갈증.
1727 주후 1727년
모라비아 형제단 — 백 년 동안 꺼지지 않은 기도회.
1735 주후 1735년
제1차 대각성의 시작과 그 신학적 분석.
1738 주후 1738년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
1784 주후 1784년
선교사가 오기 전에 조선인 스스로 신앙 공동체를 세우다.
1792 주후 1792년
"하나님께 큰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시도하라".
1801 주후 1801년
1807 주후 1807년
1832 주후 1832년
1859 주후 1859년
1865 주후 1865년
1866 주후 1866년
1882 주후 1882년
만주 우장에서 한글로 옮겨진 첫 성경.
1884 주후 1884년
선교사보다 먼저 조선인이 세운 교회.
1885 주후 1885년
1887 주후 1887년
1890 주후 1890년
자립·자전·자치 — 한국 교회 성장의 틀.
1903 주후 1903년
하디의 공개적 자기 죄 고백이 불씨가 되다.
1906 주후 1906년
1907 주후 1907년
한국 교회의 영적 원형이자 자립의 첫 단계.
1910 주후 1910년
1911 주후 1911년
기독교 지도자를 겨냥한 최초의 조직적 탄압.
1912 주후 1912년
선교부에서 한국 교회로.
1919 주후 1919년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
1919 주후 1919년
1934 주후 1934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한 말씀이시다".
1938 주후 1938년
한국 교회사에서 가장 무거운 결정.
1945 주후 1945년
1945 주후 1945년
재건과 청산을 둘러싼 노선 갈등이 시작되다.
1948 주후 1948년
1950 주후 1950년
1952 주후 1952년
1953 주후 1953년
1959 주후 1959년
WCC 가입 문제로 장로교가 다시 나뉘다.
1962 주후 1962년
가톨릭이 현대 세계와 개신교를 다시 바라보다.
1973 주후 1973년
여의도 — 대형 집회와 성장의 시대.
1974 주후 1974년
1988 주후 1988년
1989 주후 1989년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 총체적 선교의 재확인.
1989 주후 1989년
1992 주후 1992년
1994 주후 1994년
기독교 인구가 다수인 나라에서 벌어진 일 — 회심과 제자도의 관계를 다시 묻게 하다.
1995 주후 1995년
2002 주후 2002년
젠킨스 『다음 기독교 세계』 — 신자의 다수가 아프리카·아시아·라틴아메리카에 있게 되다.
2005 주후 2005년
2007 주후 2007년
2013 주후 2013년
2013 주후 2013년
2013 주후 2013년
2015 주후 2015년
2017 주후 2017년
2020 주후 2020년
전 세계 교회가 동시에 대면 예배를 멈추고 온라인으로 옮겨 가다.
2020 주후 2020년
대면 예배 중단과 함께 교회 출석·소속의 의미가 다시 물어지다.